어머니께서 다치셨다(임종일기)
2005년 2월 26일(토) 17:30경 형수씨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께서 방에서 넘어져서 다치셨는데 정신은 차리고 있으니 빨리 저녁을 먹고 오라”는 것이다.
자형에게 전화를 했다. “같이 가자”고 그리고 급히 용상으로 올라갔다.
어머니께서는 방에서 고통이 심한 모습이었고 형수씨가 죽을 끓여왔다.
“못 먹는다.” 하신다.
내가 엎고 차에 태울 양으로 엎자고 했더니 “아파서 업힐 수 없다.” 하신다.
자형께서 “119를 부르라.”하신다.
금방 119 구급차가 왔다. 금속으로 만든 들것으로 어머니를 고통 없이 안전하게 구급차에다 태우고 안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X레이 등 몇 가지 검사가 있고나서 “오른쪽 고관절이 부러졌다.” 한다.
20:00경에 병원장(박경찬)께서 오셨고 “수술을 해야 한다. 고관절 골절은 수술을 않고는 몸을 꼼짝할 수도 없고 통증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 연세가 높으셔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몇 가지 검사를 해 보고 수술을 하자.” 하신다. 나는 형님에게 “수술을 하자”고 했고 형님도 “그러자” 했다.
입원실<635호실>로 이동했고 진통제 투약과 기구를 오른쪽 다리에 장치하고 그 밤을 새웠다.
2월 27일(일)
검사 결과 “나쁜 수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면서 “연세가 높으셔서 문제가 있지만 내일 08:00에 수술을 하겠으니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 달라” 했다. 나는 형님께 동의를 얻어서
간호실에서 동의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대전에서 기혁이네 가족이 서주원이 결혼식도 보고 할머니 문병을 왔다. 혜성이가 노래를 똑똑하게 불러서 그나마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에미는 출산이 가까워 오니 배가 많이 부르다.
서울에서 기정이가 왔다. 밤에는 고통도 있고 잠을 못 이루신다. 진통제와 안정제를 투약하고 ---- 기정이 에게 밤 경과를 맡기고 집에 와서 잤다.
2월 28일(월)
17:50에 수술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21:40에 수술실을 나오셨는데 회복실은 가지 않고 바로 입원실에 오셨다. 박경찬 원장님이 참으로 고맙다. 내일은 3.1절 며칠을 수술을 미루었다면 그간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지만 걷는 연습을 하고 겨드랑이 지팡이를 이용하는 연습이 되어야 퇴원을 할 것이라고 한다. 몇 달이나 병원에 계셔야 할지 답이 없는 실정이다.
퇴원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요양병원에서 입원 가호를 받는 사태가 생기지는 않을지?
컴퓨터에 저장된 X_ray를 보니 고관절의 공 모양의 뼈는 없애고 금속으로 만든 대치기구를 대퇴골 속으로 끼워 넣고 금이 간 부분은 가는 철사로 묶어서 고정 시켰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노인들이 고관절 골절이 많다보니 그런 기구도 개발된 모양이다.
입원기간에 대구 서실이와 영해 권실이가 3번씩, 기정이는 네 번이나 와서 밤 경과를 도왔다. 오진, 영예, 장실이, 김실이 네와 기한이 기현이네 식구가 다녀갔다. 자형은 이웃에 계시니 자주 도움을 주었고 서 서방, 권 서방, 큰집 형님 내외분과 돈영, 건직, 종훈, 종성, 승용, 명순, 윤희, 명희도 왔다. 영발, 영달 종형제가 다녀갔다. 모두 같은 마음이다. 내살미 사돈은 이서방이 보내서 왔고, 태화동 사돈 내외분도 문병을 왔다.
간병하는 일 중에서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하나, 손을 바싹 붙여서 처리하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간병사와 상담도 해 보았으나 간병사를 쓰지는 않았다.
3월 21일
수술 후 3주가 되는 날이다. 휠체어에 태워서 운동을 해 보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좀 더 두고 보자는 대답이다. 연세가 많고 힘이 약해서 변화를 시도하기가 두려운 눈치다.
3월 24일
휠체어를 타고 문리치료실에 갔다. 차례를 기다려서 입실하여 침대에서 전파치료기로 치료를 끝내고 걷기운동을 시작하는 보조기에 가서 두 번 왕복을 하였다. 8m 정도다.
병실로 오셔서 일성이 “될 것 같다.”이다.
이제 백세를 바라보시는 상황에서 당신 혼자의 힘으로 화장실 출입이나 하면 그것이 최소한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 희망의 실현이 보인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날부터 약간의 보조는 했으나 화장실출입을 하셨다. 참으로 고맙고 희망이 보인다.
다음날은 48m를 걸었다. 그다음에는 휠체어 대신 바퀴 달린 보조기를 이용하여 이동 자체를 걷기운동의 시간으로 활용했고, 병실 복도를 왕래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시고, 머리감기와 목욕도 시켜드리고 이제 일상의 일을 찾아서 하시고 싶어 하시니 다행이다.
4월 2일
퇴원을 하기로 하고 수속을 했다.
입원비, 수술비, 퇴원약값을 포함해서 265만원이다. 1인실 병실 사용료가 좀 많기는 하지만 큰 부담은 아니었고, 나는 침대와 보조기를 구입하고 퇴원은 우리 집으로 하기로 마음 먹고 아내의 동의를 받아서 준비를 했다.
4월 3일
드디어 퇴원을 하는 날이다.
마음이 가볍고, 기쁨이 모두의 가슴속에 가득하다.
안방에 침대를 놓고 거실에서 보조기로 걷기운동을 하신다.
안방 전용 화장실이 있어 편리한 점이 많다.
어머님께서 체질이 강하시어 이번 수술이 가능했다.
94세! 대단하신 연세가 아닌가? 수술 후의 회복도 상당히 빨랐던 것 같다.
4월 18일
퇴원 약을 다 자셨기에 병원에 가서 X-ray촬영을 해서 결과를 보고 의사와 상담을 했다.
경과가 좋다고 했고 수술부위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10일 분 약을 주면서 하루에 세 번씩 먹지 말고 몸이 아프면 한번씩 복용하면서 약을 끊도록 노력하라 했다. 적절한 조치라 여겨진다.
4월25일
어머니께서 어지러움을 호소하신다.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안동병원으로 뫼시고 갔다.
신경과로 배당했다가 속귀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이비인후과로 보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는 다시 신경과에 갔는데 귀에는 이상이 없고 수술 후유증 일수 있다면서
15일분의 약을 처방하였다. 전에 아버님 계실 때 소 이자를 대접했던 생각이 나서 어머님께 사렸더니 구해오라신다. 평화 동 사무실 근방에 큰 고기간이 있기에 부탁을 했더니 10시 이후에 오라고 했다. 이자 껍질을 모두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상자에 담아 왔다. 어머니께서 즐겨 잡수시고 냉장고에 보관해서 몇 차례 잡수셨고 성의 있게 약을 드셨기에 어지러움의 증세가 사라졌다. 다행이다. 1주일분의 약은 남겨두고 약을 끊었다. 소의 이자(지라)를 하나 더 구입하여 드시고는 그만 먹자 하셨다.
4월 27일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도 있었기에 보조기를 사용하여 거실에서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오늘은 처음이어서 12번 돌고 마쳤다.
계속해서 매일 시간 나는대로 운동을 하시도록 말씀 드렸더니 그러마 하신다.
이후에는 걷기 회수를 늘려갔다. 50바퀴. 80바퀴. 100바퀴. 120바퀴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셨다.
운동의 효과인지 식사량도 늘고 기분도 좋아지셨다.
6월 7일
가슴 주변에 담이 결린다고 호소하셨다. 이런 증상은 전에도 자주 있었던 증상으로 가까이 있는 동산병원에 갔다. 몇 가지 검사 후 약을 처방해서 돌아왔다.
6월 12일
약이 떨어져서 이번에는 나 혼자 병원에 가서 전번의 처방대로 약을 지었다.
이런 투약을 몇 번 했으나 나중에는 또 환자를 뫼시고 오란다. 어려워도 뫼시고 가서 상담을 하고 새로운 처방을 받아서 투약을 끝내고는 또 나 혼자 가서 약을 지었다.
신경통이 몸의 여러 부위를 이동하면서 어머니를 괴롭힌다. 약방에서 파스를 사서 붙여 보기도 하고 어느 약의 효험인지 더러는 통증이 약해지기도 하였으나 오래 전부터 지병인 관계로 완치는 어려운 것 같다.
2006년 2월 4일 설날이다.
전일에 기한, 기현, 기혁 이네 식구가 모두 왔다. 식구가 12명이 되었다.
아침에 떡국을 먹고 용상을 가서 차례를 지내려는데 어머니께서는 오늘이 무슨 날이냐? 하셨다. 정신이 맑지 못하신 듯 --- 그러시다가도 설날임을 인식하시고 웃으시고 세배도 받으시면서 즐거워하신다.
3월 4일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옷을 여러벌 겹쳐서 입고있으셨다. 다리를 움직이기 힘드는 수둔이다.
한 가지씩 벗어봤더니 일곱가지나 겹쳐입었다. 왜? 냐고 여춰 봤더니 웃으신다.
9월 24일 06:50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시고 일어서서 옷을 올리다가 넘어지셨다.
아야! 아야! 하시는 소리를 듣고 화장실 문을 열어 보니 옆으로 쓰러지셨는데 고통을 호소하신다.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으로 우선 고통을 호소하셔도 화장실에 그대로 있게 할 수는 없어서 억지로 방안에 옮겨 눕히고 119를 불렀다.
형님과 자형에게 연락하고 구급차가 와서 안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X-ray 결과 왼쪽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담당의사는 박 경찬 병원장이었다. 우선은 좋은 의사를 만나서 위안은 되나 눈앞이 캄캄하다. 양쪽 다리를 다 다쳤으니!
의사의 소견은 수술을 해야 한단다. 부러진 다리를 그대로 두고는 몸을 굴리지도 못하고 환자의 통증이 심해서 도저히 대책이 없다고 하니 수술을 하기로 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는 벤자민 수치가 부족하여 주사로 보충을 하고 수치를 높혀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다.
4일이 지나고 수치가 조금 개선되어 내일 수술을 하기로 했다.
9월 29 일
수술실이 새로 지은 안동병원(강남동)에 있기 때문에 이동을 해서 10시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연세가 95세! 작년에 수술하시고 우리 집으로 오셔서 17개월 15일이 되어 또 수술을 하시는 어머니!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나의 심정!
형님의 건강이 회복되기는 거의 불가능의 지경인데! 형수씨의 심정! 그 외 주변의 동기들의 심정! 모두가 같을 것이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가셨다. 보호자 면회 시간도 하루에 2회! 우선은 한숨 잘 수 있는게 좋다.
9월 30일
아침 6시에 면회를 갔다. 어머니는 정신을 잃은 상태이고, 혈압 230~, 맥박 140, 호흡 89, 등의 매 시간 기록을 보니 엄청난 굴곡이 있었다. 겨우 목숨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18:00 오후 면회시간이다. 어머니께서 눈을 뜨시고 나를 알아보신다. 참으로 반갑다! 이제는 살았구나! 그러나 죽을 못 드신다.
10월 1일
아침에는 죽을 좀 드시고 말씀도 하신다. 회복이 순조로운 형편이다.
10월 5일
병원 응급실에서 용상의 일반 병실로 오셨다. 2인실인데 옆 침대엔 12살 소녀환자가 명찰만 있고 사람은 없다.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옆의 침대를 이용할 수 있으니
10월 10일
그동안 대구와 영해에서 내외가 다녀갔고 2일씩 간병을 하고 가니 나는 간병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기정이도 금요일에 와서 일요일에 가니 도움이 많았고 은주도 2일간 간병을 했다.
은주에게 웬 사람인가? 묻기도 하고 엉뚱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10월 15일
등에 욕창이 생겼다.
미음을 드시는데 바나나를 넣으면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기에 그렇게 했다.
미음은 형수씨가 쑤어오기도 하고 영해 권실이가 가져오기도 했다.
밥은 보호자용으로 했다.
욕창은 점점 커지고 박 경찬 병원장은 이제 외과적인 치료는 보조의사가 드레싱 정도를 하고 내과의사가 담당의사가 되었다.
10월 20일
이제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온 것 같다.
담당의사가 묻는다.
“위급한 시간이 되면 심폐소생술을 하겠느냐?”
나는 형님과 형수씨, 동기들에게 상담했다.
결론은 이제 회복은 불가하고 편안히 보내드리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대답했다. “중환자실에 가지 않겠습니다.” ‘몇 시간 연장하는 것이 무슨 효도이겠는가?’
고통의 시간만 연장하는게 아니겠는가?
10월 24일
곧장 주무시는 시간이 많다.
표정이 밝고 평화로워 보인다.
통증을 못 느끼는 수준이 되신 것이다.
미음을 조금 받으시고는 안 먹겠다고 하셨다.
통증을 호소하시지도 않고, 정신없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셨다.
10월 25일 0: 05분
어머니께서는 숨을 거두셨다.
10월 28일 한들 뒷산에 계신 아버지 산소에 합장하여 장사지냈다.
향년 95세
8남매를 출산하셔서 5남매를 키우셨다.
형님은 재령 이 병인 씨를 배우자로 맞아 1남 5녀를
임하 누님(정기)은 의성 김 시일씨를 배우자로 맞아 2남 1녀를
나는 진성 이 대생을 배우자로 맞아 3남 2녀를
신기는 대구 서 중구를 배우자로 맞아 2남 2녀를
숙희는 안동 권 호기를 배우자로 맞아 1남 2녀를 두었으니
손자가 4. 손녀가 7. 외손자 5. 외손녀 5. 징손이 28. 현손이 2. 이다.
2006년 11월 류 중 영 기록
프리지아 - 엄마의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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