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기미년 3월 21일. 임동만세시위에 약 1,500여 명의 임동인이 참여. 류정희(종손) 류동시(고종 인산에 다녀오셔서 거사 계획) 류연성(징역7년) 류동수(6년) 류교희(6년) 박진성(6년) 박재식(6년) 이강욱(6년) 류연복(5년) 류동붕(3년) 류연화(3년) 권태환(3년) 김은수(3년) 민순철(3년) 천승락(3년) 류동혁(옥중 순국) 류연기 류연익 류연태 류동혁 류만수 류동복 류치득 류 림 류광식 류경발 류기영 류동태 류동환 류동창 류연익 류종식 등 어른들께서 기양서당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 거사하였다. 면 단위 시위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67명이 실형을 받았고, 임동만세시위는 예안, 임북, 영양 등지로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