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인문/남의 글

김교환의 수필

록야綠野 2019. 7. 2. 10:19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19&view_type=sm

고정관념을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대상에 대해 경험이나 지식 등에 의해 오래전부터 굳어져 온 관념’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잘 변하지 않는 굳은 생각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 늘 자리하여 흔들리지 않는 생각이라고 해야겠다.

우리는 흔히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난 이래’ ‘그렇게는 절대 못해’ 하며 자기만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체로 이러한 현상은 늙어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과 우리의 삶은 계속 변한다.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과거의 틀에 맞춰 현재를 재단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구름과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지만 돛단배의 방향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또한 바람은 마주 보고 맞으면 역풍이지만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데 우리는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바뀌기를 바란다.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바뀌기를 바란다.

법정스님의 수필에 '거꾸로 보기'가 있다.

어느 여름날 스님이 암자에서 점심 식사 후 비스듬히 누워서 주위의 경치를 보니 평소 눈에 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깜짝 놀란 스님은 벌떡 일어나 마당에 나가서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굽혀 가랑이 사이로 전혀 다른 모습의 자연경치에 취하게 된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꾸로 경치를 보라고 소개를 한 것이 세상 거꾸로 보기로 여기엔 정말 소중한 가르침이 있다.

즉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의 중요성을 알려 준다.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시각으로 서로 다른 도수와 색깔의 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지만 이럴 때 우리는 한번 거꾸로 보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 하다. 고정된 시각을 바꾸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것에 어디 정답이 있겠나?

아무리 당연한 것처럼 알려진 생각이라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고착화 되어 버린 지식으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이성을 앞세워 사리 분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우리는 흔히들 상식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상식이란 보통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는 쪽을 말하지만 옳고 그름 즉 맞다, 틀리다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상과 비정상의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정상인가?

나이차가 많은 남녀간의 결혼이나 동성애 등은 비정상인가?

시대의 변화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기준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대 이 사회에 발 맞춰서 내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한다.

고생이 무슨 훈장도 아니요, 자랑 거리도 아닌데 오늘날과 같은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전쟁이니 가난이니 하는 젊은 시절의 고통과 같은 넋두리는 잔소리일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에게 옛날의 가치관을 들이대는 것은 마치 서울을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두고 문경새재를 넘어서 가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내 경험이 특별하고 옳다는 생각으로 젊은이를 바라보는 한 자기세계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늙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이 녹슬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과거의 갑옷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갑질 오너로서의 꼴볼견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어른들에겐 무엇보다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개방적 사고가 필요하다.

   


배려(配慮)와 인내(忍耐)하는 마음김 교 환배려(配慮)란 한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는 참 따뜻한 단어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를 보살펴주는 데서부터 배려의 시작이다.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에 맞게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뜨거운 감동이 아닐 수 없다.또한 진정한 배려는 도움을 받는 자가 모르게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이솝 우화에 ‘여우와 두루미’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자기 생일을 맞이하여 맛있는


우리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난다’란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일이 닥치면 수많은 잡생각을 한다는 뜻인데 실제로 우리는 하루 오만 가지 생각을 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중에서 4만9천 가지 이상이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원망, 짜증, 불평, 불안, 초조 등.덴마크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이스라엘 대학원에서 농업 경제를 전공하여 우리나라에 새마을 운동을 도입한 전 건국대학교 교수 유태영 박사가 ⌜나는 긍정을 선택한다⌟라는 책을 통해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사람과 부정적인 사고방



(4) 마음의 창을 열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프레임법칙」이라고 하여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눈으로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프레임(Frame)은 틀 또는 액자를 의미하지만 ‘마음의 창’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는 어떤 현상을 전체적으로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특정 부분만 강하게 부각시켜 본다는 뜻이다.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고정관념에 의한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상대방의 배려 없이 모든 걸 자기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여 서로간의 마찰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많이



까마귀가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전깃줄에 앉아있던 제비는 궁금했다.“까마귀야! 너 뭐 하니?”“보면 모르느냐? 이삿짐 싸고 있다.”제비는 다시 말을 걸었다.“이삿짐을 왜 싸는데?”까마귀는 대답했다.“이곳 사람들은 내가 울기만 하면 재수 없다고 돌멩이질하며 침을 뱉는데 나를 싫어하지 않고 반겨주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려고 그런다.”이 말을 들은 제비는 말했다.“야, 이놈아! 네가 어디를 가든 너의 그 울음소리를 바꾸지 않는 한 똑같은 미움을 받을 거야!”요즈음 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재미있는 우화이면서, 현 사회의 병폐



인도의 열대림 원주민들은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고 한다. 나무 상자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넣고 작은 구멍을 뚫어 놓는다. 손을 넣어 견과를 움켜쥔 원숭이는 구멍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사냥꾼에게 잡히고 만다. 이는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로 놓지 않는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쥘 줄만 알고 펼 줄 몰라 자기 욕심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어디 원숭이 뿐일까?우리가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움켜 쥔 채 끝내 손을 펴지 않아 크게 후회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세상사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큰 대원제국을 세웠던 징기스칸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는데 수많은 신하가 뒤를 따랐고 그의 팔목에는 매가 앉아 있었다. 종일 산과 들을 싸다녔지만 별 수확이 없어 저녁 무렵이 되자 지친 몸으로 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름길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길을 잃고 심한 갈증을 느꼈으나 따라오는 신하도 없고 매도 날아가 버렸다.혼자서 이리 저리 헤매다가 겨우 바위 밑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을 발견하고 그 물을 은잔에 받아서 먹으려는데 어디서 매가 날아와 탈쳐 버린다. 또 받으니 역시 탈쳐 버린다. 네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북인도의 어느 도시에 방문했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류 시인은 잘 아는 인도인의 아들이 천연두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인도인들은 신이 노한다는 생각에 병원엘 잘 가지 않고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인은 20살 갓 넘은 그 환자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환자를 격려하며 부모를 위로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시인이 머물고 있던 집주인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사망률이 매우 높은 법정 전염병인 천연두를 앓고 있는 환자를 병문안




법륜 스님은 “인간은 되어 가다가 죽는다” 라고 하여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함을 강조하였다.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뭐든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이것은 바로 궁금증이라고 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 가려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이는 다른 말로 배움의 본능이 아닌가 생각된다.소설가 이외수는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그런데 모르는 줄 알면서 배우지 않는 게 잘못” 이라고 했다. 그렇다. 배움은 몰랐던 사실을 앎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배움은 끝이 없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도 한계가 없다




글로벌 사이버대학 이승헌 총장은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에서 인간의 수명을 120살로 정해놓고 있다. 120이라는 숫자는 생물이 대체적으로 성장의 변곡점에서부터 6배를 산다는 통계적 수치로, 사람의 성장을 20년 정도로 본다면 120살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수명이다.700만이 넘는 베이비붐 세대(1954-1963)의 고령화 진입과 함께 이제 노인 쓰나미가 밀려온다.국가에서는 65살 이상이 되면 뭉뚱그려서 노인복지 차원의 보호 대상으로 정해 놓았다. 자칫 국가와 사회에 짐이 되고 부담만 주는 모습이 되고 있다.따라서 대부분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높은 가지의 포도를 따먹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어 !” 못 따먹는 걸 안 따먹는다고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였다. 독일의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가 이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재구성하여 천신만고 끝에 한 마리 여우가 포도를 따 먹게 된다. 그런데 그 포도는 정말 신 포도였다. 나무 밑에서 쳐다보고 있는 여우들이 부러워하는 바람에 애쓴 일이 아깝기도 하여 시고 떫은 포도를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먹다가 결국 위궤양에 걸리고 만다.우리는 아직도 신 포도 밑에서 목을 빼고




늙은 거지가 들판에 들어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 신이 나타나자 기회를 놓칠세라 거지는 엎드려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청을 한다. 신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말해 보라고 했다.첫째, 저를 부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자로 만들어준다.둘째, 저를 다시 젊어지게 해 주십시오. 신은 20대 청년으로 만들어준다. 거지는 너무 기뻐서 펄떡펄떡 뛰었다.셋째, 저를 평생 일하지 않고 살게 해 주소서. 신은 다시 돈 한 푼 없는 늙은 거지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말하기를 "일은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가장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에 오디세우스왕의 둘도 없는 친구로 멘토(mentor) 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왕이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러 나가기위해 아들 텔레나코스를 친구 멘토에게 부탁하고 떠난다.멘토는 20년의 전쟁에서 왕이 돌아올 때까지 때로는 친구같이, 때로는 아버지의 위엄으로, 때로는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친구로서의 신의를 지킨다. 20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친구를 보며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국어사전에서 멘토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주는 사람’으로 되어있다



“IN TIME” 이란 영화가 있다. 미국에서 2011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인생살이의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하는 영화이다. 커피 한 잔에 4분, 권총 1정에 3년, 스포츠카 1대에 59년 ....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은 돈이 아닌 시간으로만 계산이 가능하다.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처음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누구에게나 25년의 시간이 공평하게 그냥 주어진다. 25년이 지나면 성장을 멈추고 팔뚝에 새겨진 바디 시계로 부터 1년의 유예시간을 제공 받게 된다. 이 유예 시간 이후에는 물려받은 시간이 저축되어 있거나 자 







(16) 마음의 문을 열고 배움의 자세로.




30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고 부르지

월요일엔 등산 가고 화요일엔 기원 가고 수요일은 당구장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갓집

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세상 나이 90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도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쥐여줘서 늙은이 노릇 하게 하나.  세상은 30년간 나를 속였다

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말려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 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 볼 거야

너 늙어봤냐 나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매 되고 할배 되는 아름다운 시절도  너무너무 소중했던 시간들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서유석의 ⌜너 늙어봤냐? 나 젊어봤단다⌟ 의 노랫말이다.



노랫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은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무조건 지팡이를 쥐게 해서 힘없는 노인취급이 못마땅하다.

인생은 포기할 때 끝이다. 식구들이 말려도 나는 컴퓨터도 배우고 인터넷도 할 거야.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이니까 나는 새 출발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참 의미 있는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을 숫자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 65세가 되면 노인으로 분류되고 국가, 사회로부터 보호의 대상자가 되어야 하며 이어서 꿈도 희망도 없고 쓸모없는, 아무도 찾지 않는, 무능한, 뒷방 늙은이가 되어간다.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일괄적 노인의 규정은 국가 행정상의 편의성은 있지만 노화의 개인 간 차이가 무시된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면 늙은이가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변화하는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에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은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노소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한다. 특히 노인의 고독한 외로움 병을 해결하기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찾아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이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요 만들어 줄 수도 만들어 줘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 찾고, 만들어야한다.












'철학 인문 > 남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모르파티  (0) 2019.11.06
살아 있기에  (0) 2019.08.09
★ 웃어라 ★   (0) 2019.05.20
희망 볶기  (0) 2019.05.20
사랑하는 부모님께  (0) 201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