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인문/설화

切磋琢摩 - 告往知來

록야綠野 2017. 10. 17. 13:24











공자의 제자
자공 아야기





切磋琢磨 절차탁마

切 : 끊을 절, 모두체. 끊다. 자르다. 갈다.

磋 : 갈 차. 상아를 갈다. 닦다. 수양하다.

琢 : 쫄 탁. 다듬을 탁. 쪼다. 꾸미다. 부리로 쪼다.

磨 : 갈 마. 연자매 마. 갈다. 돌을 갈아 광을 내다.


切磋琢磨는 詩經에서 유래된 말이다.

        -詩經-


**********

「뼈를 자르는 것을 절(切)이라 하고,

상아를 다듬는 것을 차(磋)라 하며,

옥을 쪼는 것을 탁(琢)이라 하고,

돌을 가는 것을 마(磨)라고 한다.

절차탁마는 귀한 기물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학문에 성취가 있으려면

뼈나 상아나 옥과 같이 절차탁마를 해야 한다.

骨曰切, 象曰磋, 玉曰琢, 石曰磨. 切磋琢磨, 乃成寶器. 人之學問知能成就, 猶骨象玉切磋琢磨也.」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35 양지(量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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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玉)이 뿔(角) 따위 갈고 닦아서 낸다는 것이 원 뜻이다.

이 의미가 「정진하다」와 같은 뜻으로 전용되었다.

학문이나 도덕 기예(技藝) 열심히 배우고 익혀 수련한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논어 학이편(學而篇) 15장을 보면 자공(子貢)과 공자(孔子)의 대화에서 절차탁마가 나오고 있다.

               




子貢曰 貧而無諂富而無驕 何如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諂 : 아첨할 첨. 驕 : 교만할 교

자공(子貢)이 물었다.
「가난하지만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지만 교만함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禮)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자공이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절단한 뒤에 다시 그것을 간 듯하며,
쪼은 뒤에 다시 그것을 간 듯하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자공)와는 이제 시(詩)를 말할 만하구나.
이미 지나간 것을 말해 주자,
앞으로 말해 줄 것까지 아는구나.」


告諸往而知來者  諸 : 어조사로 강조.  者: 의존명사인 것

    고저왕이지래자  諸 : 어조사는 '저'로 읽음.

지난 것을  알려주니 다가 올 것도 안다.

과가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다.

사자성어로는 知來라 한다.




시경(詩經)>국풍(國風)>위풍(第五 衛風)>기오(淇奧)에 있는 3연 중 첫째 연.


기오(淇奧) / 기수의 물굽이

瞻彼淇奧 첨피기오 : 저 기수가의 물굽이 瞻 :보다 奧 :물굽이
綠竹猗猗 죽의의 : 푸른 댓잎 무성하네.猗 : 아름답고 무성
有匪君子 유비군자 : 빛나는 군자님은 匪는 斐(아름다울 비)와 通함
如切如磋 여절여차 : 깎은 듯 다듬은 듯
如琢如磨 여탁여마 : 쪼은 듯 간 듯
兮僩兮 슬혜한혜 : 장중하고 당당하여  瑟:엄숙하다.

赫兮咺兮 혁혜훤혜 : 번쩍번쩍 훤칠하네.  僩 : 용맹스럽다.
有匪君子 유비군자 : 빛나는 군자님
終不可諼 종불가훤 : 죽도록 잊을 수 없어라. 諼 : 잊다.


시경(詩經)>국풍(國風)>위풍(衛風)


시경의 風이란 민요를 의미한다.

衛風은 위나라의 민요다.

君子는 임 또는 그대란 뜻으로 위나라 武王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인 셈이다.

왕을 찬양하는 노래다.

얼마나 정치를 잘했으면 왕을 예찬하는 민요가 나돌았을가.

부러운 일이다.


자공이 시경 기오(淇奧)의

如切如磋 如琢如磨(切磋琢磨)를 들먹이자

공자가 만면의 웃음을 지의며

諸往而知來者(古往知萊)

지난 일을 알으켜 줬더니 앞 일오 알아서 척척 할 사람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시경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제자이니

자신과 같은 반열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공자는 평상시 주(周)나라 예법(禮法)을 따를 것이라 했으며

詩(시경)를 금과옥조처럼 숭상했던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


논어 집주서설(論語集註序說)에서는

공자의 제자가  3천여 명이나  된다고  했다.


弟子  蓋三千焉   身通六藝者七十二人

제자는 대략  3천여 명이나  있었다.

그  중에 몸소 육예(六藝)에 통달한 자가 72 명이나  되었다. 


또한 「사기 중니열전(史記仲尼列傳)」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孔子曰  受業身通者七十有七人  皆異能之士也.

공자가 말했다.

내 수업을  받고   (六藝)통달한 사람이 77명이다.

모두가  남다른  능력의  인재들이었다.


논어 선진편(先進偏)  2장에서는 이를  더 압축하여

10 명을 사과(四科)로 구분하여  열거하고  있다.


德行 :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政事  : 염유(冉有)  계로(季路)

言語  : 자아(宰我) 자공(子貢)

文學  :  자아(子游)  자하(子夏)

당나라 현종때 이들을 공자십철(孔子十哲)이라 불렀다.

십철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자가 안연(顔淵 )이다.


안연(顔淵 ) :

안회(安蛔)라 부르며 자(字)는 연(子淵)  노(魯)나라 사람이다.

공자보다 30세  연하로 인품이 뛰어났는데  요절했다.

안회가 죽자 공자는 선진편(先進篇)  8장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통곡을 했다.


顔淵   子曰      天喪予   天喪

안연이 죽자. 공자가  외쳤다.

아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었다.  하늘이 나를 버리시었다.

안회는 일생을 벼슬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았던

공자가  제일 아낀 수제자였다.


자공(子貢) :

성이 단목(端沐) 이름이 사(賜)다. 위(衛)나라 사람으로

자(字)가 자공(子貢)이며 공자보다 31세 연하다.

자공은 장사 수완이 좋아 재산을 많이 모았다.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의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의 재산을 쌓아 두었다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죽자  삼 년 상을 치른 뒤 모든 제자는 돌아 갔지만

유독 자공만이 무덤가에 여막(廬幕)을 짓고 도합 6 년 동안 복상(服喪)했다.


자공은 변설에 뛰어났다. 공자는 항상 그의 변설을 억제하였다.(子貢利口巧辭 孔子常黜其辯黜: 내칠 출 -중니열전-




논어 공야장편(公冶長篇) 8장


子謂子貢曰 女與回也 孰愈

공자께서 자공(子貢)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안회(顔回)는 누가 더 나으냐?”

對曰 賜也 何敢望回 回也  聞一以知十 賜也  聞一以知二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顔回)를 바라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
[聞一知十(문일지십):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사자성어 파생-

子曰 弗如也 吾與女 弗如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안회만 못하다.
나는 네가 그만 못함을 인정한다.」

吾與女 弗如也에서
與를 [과여]로 보고
'나와 너는 그만 못하다'로 풀이하기도 한다.

자공이 아무리 언변이 뛰어나다 해도 인품이 안회만 못하니 자중하라란 공자의 구절이다.



자공은 공자가 자신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 지를 알아 봤다.


子貢旣已受業  -중니열전-

자공이 수업을 마친뒤 물어 봤다.


공야장편(公冶長篇) 3장에 이렇게 적고 있다.


子貢問曰 賜何人也

子曰 汝器也  何器也

자공이 물어 말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왈  「너는 그릇이다.」

사(자공)왈 어떤 그릇입니까?」

자왈  (종묘의 제기를 담는 아주 귀중한) 「호련이다.」


논어 집주 풀이

器(그릇)는 유용하게 쓰이는 좋은 재질을 갖춘 그릇 같은 인재라는 뜻이다.

하(夏)나라에서 호(瑚), 

상(商)나라에서 연(璉),

주(周)낭에서는 보궤(簠簋)라 했다.

瑚(산호 호)와 璉(호련 련)는 제사 지낼 때 쓰는 그릇이다.

종묘 제사 때 기장과 피(黍稷 :곡물)를 고여 바치는 제기로

옥(玉)으로 장식했다.

그릇 중에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器者는 有用之成材라 夏曰瑚요, 商曰璉이요,
周曰簠簋니 皆宗廟盛黍稷之器而飾以玉하니
器之貴重而華美者也라 .


공자가 자공을 호련(瑚璉)으로 비유했으니

세상에서 중요하고 요긴하게 쓰일 인재로 본 것이다.


子曰

너는 호련 같이 중요한 사람이다.


공자의 안목이 얼마나 예리했던가를

중니열전(仲尼列傳)의 자공(子貢)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제(齊)나라 대부(大夫) 전상(田常)이란 자가 난을 일으켜 노(魯)나를 정벌하려 했다. (田常欲作亂於齊)


공자가 자공을 시켜 이를 막도록 했다.

자공은 여러 나라로 유세(遊說)를 떠나 10여년 만에 그의 언변을 통해 노나라를 구했다.


孔子聞之謂門弟子曰

夫魯 墳墓所處父母之國 國危如此 二三子何爲莫出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노나라는 조상의 분묘(墳墓)가 있는 부모의 나라이다.

나라가 이처럼 위태로운데 너희들은 어찌 나서려하지 않는가?」


子路請出孔子止之

子張 子石(公孫龍)請行孔子弗許

子貢請行孔子許之

자로가 나서기를 자청했지만 공자가 저지했다.

자장과 자석(공손룡)이 지원하자 공자는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이 나서자  비로소 공자는 허락하였다.

 -자공(子貢) 유세 중략-


子貢一出 存魯 亂齊 破吳彊晉而霸越

자공이 한번 행차함으로씨 노나라를 보존하였고

제나라는 내란이 일어났으며 오나라는 멸망했다.

진나라는 강해젔고 월나라를 패자가 되었다.


子貢一使,使勢相破 十年之中 五國各有變  

자공이 한번 사신이 되어 나서자

각국들 사이에 세력균형이 깨졌고

십년 동안에 다섯 나라에 제각기 변화가 생겼다.

 

우리나라도 고려때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가 거란군 총사령관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변설(辯舌)로 양국간 전쟁을 종식시키는 쾌거의 역사가 있다.


춘추시대 자공도 서희와 같은 일을 했다.

자공의 언변의 지략으로 제후국들의 판도를 바꾸었다.

 

告諸往而知來者(고저왕이지래자)

告往知來

옛 것을  알아 보면 앞일을 알 수 있다고 한 공자의 말이

헛말이 아님이 여실히 들어나고 있다.


제자들의 일상을 살펴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성인(聖人)의 지혜가  섬광처럼 밫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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