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지역의 불천위
알려진 바로는 안동 지역에는 몇 분의 국불천위를 포함하여 50분의 불천위가 있다. 불천위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동은 퇴계 이래 그 영향의 학맥 속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그에 따라 불천위 가운데에서도 유림불천위의 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유림불천위는 지역유림의 공론을 바탕으로 모셔진 불천위이다. 유림에 의하여 불천위가 되는 과정은 각 지역의 향교나 서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각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 각 인물의 공적을 살피고 자격조건을 공정하게 검토한 후 합의하여 유림의 결의를 거치게 된다.
1779년 변중일(1573-1660)의 부조(不 )를 정할 때에 원근의 사림들 280여명이 모여 결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아마도 불천위로 모시고자 하면 문중에서 통문을 유림에 보내고 유림들은 서원이나 향교 등을 중심으로 '불천위의 대상이 될만하다'는 의견을 모아 의견이 모아지면 결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싶다.
안동의 불천위 대부분이 아마도 이러한 경로를 거쳤을 것이다. 불천위의 신주는 사당에 모시거나 따로 별묘를 만들어 모시기도 하는데 국가에서 정하는 불천위의 경우, 비록 불천위의 자격 조건이 되어도 연달아 2, 3세에 걸치는 경우는 첫 번째 신위만을 불천위로 정한다는 것이 나라의 입장이었다. 한집안에 두분의 불천위가 있을 경우는 별묘를 둔다.
불천위를 모신다는 것은 뛰어나게 훌륭한 조상을 두었다는 의미이므로 문중 전체의 영광이었다. 안동에서는 불천위 제사를 대묘제사, 또는 큰제사라고 하는데 불천위는 대개 한 파의 파조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불천위제사에는 종가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은 물론이고 불천위의 자손이 되는 원근의 일가까지도 참여한다.
또한 학맥이나 혼맥 등으로 얽힌 타 문중에서도 참여한다.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많은 경우 서원에도 배향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단순히 한 문중의 제사가 아니라 지역 내지 학문적 연관을 지닌 모든 이들의 제사도 되는 것이다.그래서 퇴계 학통을 이은 서산 김흥락이 종손으로서 학봉 김성일의 불천위 제사를 받들 당시 불천위 제사에 참여한 이들이 천여명에 이르러 종가 주변이 온통 하얀 도포로 뒤덮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소를 잡았다고 한다. 그 뒤에도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참여 제관이 2, 3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불천위 제사는 훌륭한 조상의 덕을 기리고 혈족의 정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문중의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문중의 자손으로서 5대가 지나면 벗어나는 일반 친족의 범위를, 영원히 옮기지 않는 불천위의 같은 자손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확대하여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불천위 제사인 것이다.
이름난 불천위 제사에는 유림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지역 유림의 현안들이 논의되기도 하고, 또한 불천위의 후손들이 함께 모이기 때문에 문중의 여러 문제들이 논의되는 임시 문회가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안동의 불천위(不遷位) (50위)]
1.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와룡 지내]
2. 병곡(屛谷) 권 구(權 榘) [풍천 가일]
3. 송소(松巢) 권 우(權 宇) [와룡 이상]
4. 등암(藤巖) 권 징(權 徵) [와룡 가야]
5. 이우당(二愚堂) 권 환(權 寏) [임하리]
6.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예안 부포]
7. 죽봉(竹峯) 김 간(金 侃) 풍산 오미]
8.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길안 묵계]
9. 귀와(龜窩) 김굉(金㙆) [일직 구미]]
10.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 [풍산 오미]
11.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서후 금계]
12.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임하 천전]
13.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 [예천 호명]
14. 유일재(唯一齋) 김언기(金彦璣) [와룡 가구]
15. 계암(溪巖) 김영(金坽) [와룡 오천]
16. 운천(雲川) 김 용(金 涌) [임하 천전]
17. 청계(靑溪) 김 진(金 璡) [임하 천전]
18.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풍천 하회]
19.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풍천 하회]
20. 용와(慵窩) 류승현(柳升鉉) [임동 박곡]
21. 겸암(謙菴) 류운룡 (柳雲龍) [풍천 하회]
22. 삼산(三山) 류정원(柳正源) [예안 주진]
23. 파산(巴山) 류중엄(柳仲淹) [풍천 광덕]
24.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풍천 하회]
25. 백졸암(百拙庵) 류 직(柳 㮨) [임동 고천]
26.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 [ 임동 한들]
27.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 [임동 마령]
28.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안동 송천]
29. 간재(簡齋) 변중일(邊中一) [서후 금계]
30. 노송정(老松亭) 이계양(李繼陽) [도산 온혜]
31.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녹전 원천]
32. 반초당(反招堂) 이명익(李溟翼) [녹전 원천]
33. 나졸재(懶拙齋) 이산두(李山斗) [ 풍산 하리]
34.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일직 망호]
35. 동암(東巖) 이영도(李詠道) [도산 토계]
36. 송재(松齋) 이 우(李 堣) [ 안동 옥정동]
37. 경유정(慶流亭) 이 정(李 禎) [와룡 주하]
38. 후산(后山) 김종수(金宗洙) [일직 송리]
39. 온계(溫溪) 이 해(李 瀣) [도산 온혜]
40.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도산 운곡]
41.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일직 망호]
42. 퇴계(退溪) 이 황(李 滉) [도산 토계]
43. 청옹(淸翁) 이준영(李俊榮) [안동 법흥]
44.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서후 성곡]
45. 죽헌(竹軒) 정 두(鄭 枓) [와룡 태리]
46. 월천(月川) 조 목(趙 穆) [도산 동부]
47.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서후 교리]
48.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 [남후 광음]
49. 고산(孤山) 이유장(李惟樟) [풍산 상리]
50. 이 졍(李 禎) [와룡 두루]
[불천위의 配位]
불천위의 배위는 혼인으로 연결 짓는 처가와 외가 및 매가(妹家)의 관계를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안동지역의 각 가문에서는 세대의 수를 올라가면 조상의 외가를 알고 그들과 관계하는 것을 예절로 삼고 있다. 특히 4대조 상의 외가를 구분하면 여성과 관계하는 것으로, 어머니의 친정은 나의 ‘외가’이고, 할머니의 친정은 아버지의 외가로서 나의 ‘진외가’이고, 증조모의 친정은 아버지의 진외가이며, 나의 ‘증 외가’이고, 고조모의 친정은 나의 ‘선외가’가 된다. 그 다음으로서 숫자의 세대로 구분하여 5대조, 6대조, 10대조, 15대조 외가로 올라간다.
특히 불천위가 있는 종가의 경우, 배위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종가의 자손은 불천위로 삼은 할머니의 친정으로서, 그 자손과 외척의 연비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15대조 외가’, “불천위인 00할매의 외가에서 왔다”고 이야기한다. 본인과 아버지의 처가이고 자신과 자식의 외가의 경우를 통틀어 ‘연사가’라고 한다. 이런 관계로 맺은 친척을 ‘연비일가’라 한다. 불천위가 있는 종가에서는 대체로 배위의 자손과 아직도 내왕을 한다. 평소보다는 주로 집안의 대사가 있을 경우인데, 그것은 초상, 길사, 불천위와 관련되는 일이 생겼을 경우에 연락을 닿게 한다. 또한 불천위 제사가 있는 날에 참례하기도 한다. 이들이 오면 가장 큰손님으로 접대한다. 불천위의 배위는 자손을 번성시키고 한 가문을 지속시킨 귀감이 되는 사람이고, 배위의 본가에서는 할머니로서 난 자식이 자신의 가문의 영예를 더하였기 때문이다.
불천위의 외가는 아마도 누대로 내려오면서 서로 주고받은 관계에 의한 관습에서 지금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갑자기 몇 대만에 이어진 경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간혹 그 관계를 추적하지 못하는 종가의 경우도 더러 생긴다. 게다가 불천위의 경우, 지금도 그 외가의 외손봉사를 하고 있는 종가도 있다.
그 배위는 전체를 분류만 해 보기로 한다.
안동권씨가 12명(관향이 화산, 영가인 경우도 포함됨), 영양남씨가 5명, 봉화금씨가 3명이다. 함창김씨, 재령이씨, 전주류씨, 문소김씨, 동래정씨, 영천이씨, 무안박씨, 진성이씨는 각각 2명씩이다. 그 외 1명씩인 경우는 다음과 같다. 안동김씨, 황성조씨, 전의이씨, 이천서씨, 의령남씨, 벽진이씨, 전주이씨, 양천허씨, 여흥민씨, 선성이씨, 영해신씨, 信川강씨, 영양김씨, 고창오씨, 장수황씨, 월성이씨, 연안김씨, 김해허씨, 선성김씨로 모두 34명이다.
그 외 축문의 경우에 관향을 열거하지 않고 00김씨(4명), 00신씨, 00이씨(3명)로 성만 읽는 경우가 있다. 거의 본관을 쓰지 않는다.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으나 삼가는 것 같다. 47위 가운데 부인이 3명인 경우가 1명, 2위인 경우가 11명, 1위인 경우가 35명이다. 모두 59명에 해당한다.
☐ 결 론
나라에 큰 공훈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신주는 오대봉사가 지난 뒤에도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가 불천위다.
그러나 조선말에 정해진 국. 불천위는 조정 중신들의 파당적 이해가 개입되기도 하였다. 유림불천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하는 사례가 있었다. 국. 불천위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두 국불천위 들이다. 이 밖에도 왕이나 왕자·부마 등도 엄격히 따지면 국불천위의 대상에 속한다. 유림불천위나 사불천위는 그 수가 대단히 많은데, 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사람들은 일단 그 대상으로 볼 수 있겠다.
불천위는 그 자손들이 있는 한 분묘와는 별도로 사당에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이러한 제사를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 혹은 불천위대제(不遷位大祭)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조상의 기제사(忌祭祀)는 4대까지만 봉사하고 5대부터는 혼백을 무덤에 묻고 묘사의 대상으로만 한다. 그러나 불천위는 계속하여 신위를 사당에 모시고, 기제사는 물론 묘사나 시제(時祭)를 지낸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가문에 따라서는 불천위에 대하여 기제사만 지내기도 한다. 불천위제사는 불천위로 정해진 뒤 3년째부터 지내는 것이 원칙이다. 제사의 절차는 가문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나 기제사의 절차에 준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불천위제사에는 지방의 유림이나 유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종손이 주제를 하되 문중뿐만 아니라 유림에서도 제관이 선정된다는 점이 다르다.
또, 문중에 따라서는 후손들이 제관이 되어 사신(辭神)을 하면 유림들이 제사지내는 장소에 들어와 재배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불천위와 그에 대한 제사는 국가나 유림, 문중에서 정하는 공훈이 있는 훌륭한 사람에 대한 예우이기 때문에 훌륭한 조상은 살아 있을 때의 지위에 따라 죽어서도 특별대우 된다는 구조를 지닌다.
또한, 죽은 이의 생존 업적이나 지위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조상숭배가 아니고 기념되거나 추도된다는 성격을 지닌다. 불천위를 모시고 있는 문중의 입장에서 보면 조정이나 유림에서 봉사할 만한 위대한 선조를 가졌다는 영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문중성원들의 단결과 동질감을 강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위세와 우월감을 조장시켜주기도 한다. 그래서 불천위가 있는 문중에서는 명조(名祖)를 두었다는 점을 자랑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