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류 중영/자녀교육

5자녀의 교육

록야綠野 2010. 11. 15. 18:11

 5자녀의 교육

 61.9.11. 기주가 나고  행동이 거슬리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8살 되던 해인 68. 1.2. 기한이가 났다.

무척 귀여웠고 소명했다.  69.12.22. 기현이가 났고,  72. 1.9.에 은영이가,  74년 3.11에 기혁이가 났다.

유년시절에는 교원 봉급이 열악하여 돈이 모자라서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다.

학습성적이 좋게 나왔고 친구도 잘 사귀며 구김살 없이 성장했다.

혈액형 검사에서 하나같이 AB형이다.   내가 듣기로는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했는데 속으로 은근히 천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영이가 초등학교 때 지능검사에서 143이 나와서 전교에서 가장 높은 수치임을 전해 들었으나 학력이 출중하진 않은 것 같았다.

 

 - 기주가 교대 입학에 실패하고 간호전문학교  졸업성적이 좋아서 금메달을 받았고,   서울의 명동성모병원 입사시험에서 무난히 합격을 하여  취직이 되었고,  제 스스로 생활이 되니까  스스로 방송통신대학에서 가정학과를 마치고  이어서  간호학의 학사과정을 무난하게 끝냈다.  병원 생활도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맡은 일을 자신있게 처리하고, 의사나, 환자와의 교감도 잘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1987년 기한이는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10월 초에  KAIST에서는 처음으로 학사과정 학생모집 입학시험이 있어서 안고에서도 많은 학생이 지원했는데 혼자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  학교에서도 좋아했고 친구들도 부러워 하면서 좋은 학생 많이 모였다. 특히 입시공부에서 건강이 좋지 못하여 감기를 자주 하여 걱정이 많았는데,  11월 초에 합격통지를 받았으니 12월에 수능을 치는 동료학생에 비하여 심리적으로 부담을 덜었고 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KAIST에서는  수업료, 기숙사비, 생활 잡비까지 국비로 지급되고보니 자녀교육에 대한 경제적인 짐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1학년 2학기에 근로장학을 신청하여 수영장에서 17:00 부터   1 시간 씩 봉사활동을 했는데 수영을 한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학습(실험과 자기주도적 활동)과 기숙사생활도 차차 익숙해 지면서 성적도 잘 나왔다.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우리나라 의 경제적인 수준이 낮아서 기초과학인 물리학을 해서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어야 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믿었다.  학사과정을 마치고 제비원 뒷산에 가서 진학에 관한 생각을 질의를 했더니  계속하겠다 해서 석. 박사 과정을 계속하여 하면서 영국의 그래스고우에서 연구활동을 1년간 하는데 경비는 한국과 영국에서 50%씩 부담하여 좋은 연구를 하고 귀국했다.  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한이가 학비 걱정을 시키지 않아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또한 군 입대는 6주간 기본훈련만 받고 국내에서 연구활동을  5년간 하면 되었기 때문에 군 복무로 인한 기간을 공부하는데 전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1996년 2월에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1990년 기현이도 경북대학교에 입학하여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성적이 좋아서 (주)코오롱에서 장학금을 받아  큰 보탬이 되었고.  졸업 성적도 높은 편이었다. 동아리 활동으로 태권도를 해서 2단을 따기도 했다.

1994년  석사과정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합격하여 무척 대견스러웠다.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으면서 반도체를 전공했는데  석사 논문이 좋아서 미국으로 보내서 제품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1996년 석사학위를 받고 연달아서 박사과정을 했다.

박사과정은 산학으로 삼성전자에서 학비보조와 생활비 보조를  많이 받아서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박사과정 도중에 I I I (전기전자 전문 학술지) 에 논문을  4편이나 발표했다.  삼성전자에서 실시하는 휴먼테크 논문대상도 했다.  그리하여 전자학계에서  우수한 실력자로 인정을 받는 우수인재가 되었다.  어쩐 일인지 냉큼 학위 수여를 못하고 있어서 알아보니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학의 관행이기도 한 듯 했다.

 1998년 8월에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1992년 은영이는 안동대학 입학시험에서 과 수석을 했다.  일부 장학금을 받았고. 1996년 통계학을 전공하여 학사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에는 조교로 2년간 활동하는 특혜를 받았다.

 

 

 

 

 - 1893년 기혁이가 대구과학고등학교 2학년 때에  KAIST에  조기 입학이 되었고  생물공학을 전공하여

학사과정을 마치고, 군 복무는 지 형처럼 4주간 기본훈련을 마치고는 계속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석사, 박사과정까지 가면서 지도교수 (서연수)가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이면서 스위스 쮜이리히에서 반년간 연구활동을 했다. 서울의 삼성병원 부설 삼성생명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했고,  삼성생명연구소가 수원으로 옮겨서도 꼐속 따라다녔다.  2002년 8월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서교수 님은 기혁이를 놓지 않았다.

 

 

 

 

 나는 5남매의 적지않은 자녀를 큰 부담없이 교육시키게 된 것이 자랑스럽고 자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