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야綠野 2010. 7. 13. 21:31



 

理學博士    류 기 한

 

 

 

 

 

 장자 柳基漢

 1968. 1. 2.  안동시 임동면 한들에서 출생

1974년  임동국민학교 입학     '77년 안동국민학교로 4학년 전입학

1980년  안동중학교 입학(학력 우수)

'84년 안동고등학교 입학(학력 우수)

'87년 한국과학기술대학교 (KAIST) 안동고에서 단독 합격 입학. 

'91 동 대학원 진학   ('93년 석사학위 취득)

'93년 KAIST 박사과정 진학

'96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 물리학 연구소에서 연수

'98년  KAIST 에서理學博士학위 취득

 

2018년 현재  집주소

      Gi Han Ryu

     41 STALEY AVENUE,

     NEW MALDEN,

     SURREY, KT3 6EW,

     UK

 

 

 

 

 

 

KAIST 학사과정 졸업 기념

                                                                '98년  KAIST 에서理學博士학위 취득

 

 

'98년 LG전선 연구소 선임연구원

'98.12.20. 權五慶(중등 국어과교사)과 혼인

 

 

 

 

 

 

 

 

 

그리닛지 천문대

 

 

 

 

 

 

 

'02. 1. 25 旻錫 출생

 

 

 

 

 

 

 

 

'09. 8. 27. 오경과 민석 영국으로 날아감.

 

 

 

 

 

 

Imperial College

            Molecuer Vision 연구소에서 광시스템 설계와 제작을 담당

 

 

 

2011년 만든 전기 장치

 

 

 

 

반짝이는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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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께...
 아버님!  지금쯤이면 인천 공항에 거의 도착하셨을 것 같아요.  아버님께서 한국까지 가시는 그 시간 동안 저희는 히드로 공항에서부터 집까지 와서 저녁 간단히 먹고 10시쯤 잠자리에 들어 조금 전에 일어났습니다.(민석이는 공항에서 오는 길에 잠이 들었는데 집에 와서 잠깐 깨서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이 닦고 다시 자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자고 있어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가야 한국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 저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와서 살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져요.  평소에는 인터넷이나 전화 때문에 그런 사실이 이렇게까지 와 닿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일어나서 커텐을 젖히고 보니 아버님 계셨던 기간과는 다르게 하늘이 흐려요.  오늘 최고 기온도 18도라고 해요.  아버님 가신 다음 날부터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처럼 날씨가 바뀌는지요.  어제 집에 와서 민석이 아빠 하는 말이 "아버지 왔다 가신 게 꼭 꿈꾼 것 같다." 하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그 전에 이만큼의 기간 만큼 아버님과 줄곧 함께 지냈던 적이  없었지요.  아버님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많이 허전해요...   이 곳에 사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민석이도 아직 어린 남자 아이라 표현은 안 하지만 이번 봄 방학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아버님 계신는 동안 이곳 저곳 다니면서 너무 즐거웠답니다.  바이버리에 송어 잡으러 가는 길에 잠깐 들렀던 '레이콕'이라는 마을만 빼고는 대부분이 미리 가 본 곳이었지만. 아버님께 저희가 가 보고 좋았던 곳을 보여 드리는 게 흐믓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님!  그리고, 아버님 계실 때 제가 아픈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필 그 때 그래서 제 자신에게 화도 좀 났어요.  여기 와서 감기로 병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감기를 제가 조금은 우습게 여겨서 그렇게 되었나 봐요.  그래도 약 먹고 이제는 거의 나은 기분이 들어요.
 이제 저희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잠시 후면 민석이 아빠도 출근하고, 저는 민석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어야 하지요.
 아버님!  지금부터 더욱 보람있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늘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면서......
 아버님, 어머님!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011.4.26  

오경 올림

 

 

 

 



부활절 영국 여행






2011. 4. 19 ~26.



런던에서



민석이네



세 식구와의



나들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2012년 어버이날

     아버지  어머니

       제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님 생각을 한다더니 민석이를 키우면서 두분이 저에게 베푸신사랑을 실감합니다. 가까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고, 그립습니다. 다시 만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십시요.  사랑해요.----- 기한  올림

    아버님  어머님!

       이 먼 타향에서 저희 세 식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늘 저희를 생각하시고, 염려해 주시는 부모님 덕분입니다. 부디 올해에도 건강하시고, 저희에게 기쁜 소식들과 삶의 지혜를 많이 들려주세요,     ---     오경  올림

 

      할아버지 할머니 

 어버이날을 축하해요.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사랑해요. 

                                                     ---- 민석  올림

 

 

2012. 9.~10.   민석이 중학교 입학시험

    4 학교 모두 합격

2013.3.1.  TIFFIN School

입학통지서 받음.

2013.9.1. TIFFIN School

입학식

 

 

 

 

2012.11.12. 내 생일에 보낸 카드

 

HAppy Birthday 글자 짜임과 편지 윤곽 디자인이 특색있다.

HAppy Birthday !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항상 저를 격려해 주시고, 칭찬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항상 제 곁에 계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이 카드를 쓰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

                                      민석 올림.

 

 

   We are olways with you.......

 

ENJOY YOUR

                 DAY

아버지!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특별히 아버지께 '민석이의 합격"이라는 좋은 소식을 선물로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이 부모님의 성원과 격려, 그리고 기도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기쁜 소식 많이 전해드리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아버지! 늘 건강하세요 !!

                             영국에서  기한 . 오경  올림.

 

2012년 크리스마스 카드

   던도날드 초등학교 에서 민석이 그림을 넣어서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   
사슴의 뿔이 크고,   MERRY  Christmas!  글씨와 벽난로의 디자인이 특색 있다.

 

 

2013. 3. 21. 인사차 귀국

3. 26 ~ 28. 경주, 감포지역 관광 여행 (우리 내외 동행).

4. 10. 기한이 혼자 출국.

4. 17. 민석 혼자 출국.

4. 26.오경 혼자 출국

 

 

 

 

 

 

 

 

 

 

 

민석이가 만든 류가뉴스와 홈페이지

<열어보세요. 재미있고 유익한 자료가 많아요.>

 

 제가 이번에는 더 좋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봤어요. 사이트 타이틀은 '류가 뉴스'이고 링크는

http://minseok5432.wix.com/my-news

 

 

영국 초등학생 기억력 평가에서 19등 내에 뽚힌 민석

상장을 들고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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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어버이날 엽서가 왔다

아버님! 어머님!

1년중 가장 눈부신 계절에 어버이날을 맞아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그런데, 가가운 곳에있지 못하고 이 멀리서 항상 열심히 생활하겠다는 다짐과 약속 만으로감사인사를 대신하여죄송합니다. 요즘 저희 세식구 바쁜 것이 좋은 것이라 여기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중 략)

아버님 어머님 덕분에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음에 늘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오경,기한 올림

 

할아버지, 할머니!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카드를 쓰고 있습니다.

저를 아주 많이 사랑헤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허리 안 아프시고,할머니 므릎 편해지고, 두 분 모두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자라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예의도 잘 배우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해요!   민석  올림

민석이네 2-1.jpg

 

 

 

2016.2.1.에 민석이가 만들어 보내온 웹싸이트

 제가 오늘 저에 대한 웹사이트를 재미로 만들어 봤는데, 아래 링크로 가면 되요.

 

http://minseok5432.wix.com/my-lifestory

 

 

 

민석 올림

'재영 한글학교 연합 글짓기 대회' 초등부 동상 수상자

                                                                    류민석의 작품:

 

"나는 영국에서 보낸 기간이 벌써 6년이나 지났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살았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내가 한국어로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런던한국학교' 덕분이다 [...] 아직도 여기 사는 친구들은 영국에서 한글이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귀찮은 마음으로 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어 볼 것이다. 하지만 한글 공부를 해야 하는 중요성을 알려주면 곧 오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첫재, 요즘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한글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다. 가는 곳마다 한국 아이들은 서로 영어로 말을 주고 받곤 한다 [...] 둘째, 한국에 사는 가족들과도 통화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 그래서 나도 계속 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좋겠다. 한글도 배우면서 한국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웃음꽃 피는 한글학교는 아이들에게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다."

 

 

2016. 4.22~5.7  인사차 귀국

 4.22  인천공항에 사돈(권영부)께서 마중.     - 4.25.  여권갱신 등 서류정리차

 4.26 안동 도착 맏어머니와 고모부 내외 초청  점심식사.   안동태사묘 방문.  유물관의 유물 관람

- 특별 안내(해설사) 받음음

안동태사묘전경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 권 행. 장정필 --삼태사 사당

 

4.27.  한국국학진흥원 방문  - 유교 책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우리고조부 근암문집 책판 포함))

 

           우리문중(전주류씨 수곡파) 유물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권진호 박사(책임연구원 가 민석에게 한 말  -  ("너희의 문중은 대단히 훌륭한 학자를 대단히 많이 배출한 집안이다.   너(류민석)도 조상의 업적에 뒤    지지않는 훌륭한 학자가 되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라는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민석이와 나는 좋은 격려를 해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어서 도산서원애 가면서 퇴계선생의 훌륭한 가르침을 이야기  하고 권박사의 격려를 되새겼다. 도산서원 견학에서 도산서당의 소박한 규모와 이곳에서 많은 석학들 이 배출된 것을 이야기 했다.

4.28  영양 선바위 홍보관,   청송 신촌의 야송미술관 견학  국내 최대작 [청량백운도] 감상. 영덕 삼근리의 외종씨 댁 방문 {박영자 박사 이야기 듣고}          영해 매제 집 방문  - 삼계리 에 새로 지은 [淸儉堂] 방문

기문의 의미를 설명   저녁 만찬(대구 서실이 합석)

4.29.  삼척 {환선굴}답사 정동진에서 1박 -  정동진 철도공원 체험 후 서울로 직행  선고,비 제사 참사

집안 어른과 친척 손님 인사  - [선고,비 104회 생신맞이 제사.]   -  별내 장실(민석이 큰고모)네 집에서 민석이 9종반이 모여서 추억쌓기

5.01.  동기들의 모임.  오찬. 만찬 1박 

5.02.   우리 내외는 안동으로 내려오고 자녀들 5남매 모임

5.03.~06. 민석이 외가에서 창덕궁 답사  등등   [앨범 제작] 안동으로 송부

5.07  영국행

 

2016.11.1.     영국으로 보낸 편지

◈★어머니 우리 어머니 !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때 육이오 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 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일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로 씌어 주셨다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개천에 가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삼 일째 되는 날 담장 안집 여주인이 나와서 우리가 호박잎을 너무 따서 호박이 열리지않는다고 다른데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는 끈을 매어서 나에게 지우시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져 줄게> 하였다.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첫마디가 <쌀자루는 어디 갔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져 준다면서 쌀자루를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 하시며 우셨다.

  그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다니. 그 후 어머니에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바보처럼 보이는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박동규님의 글입니다.

이글 속의 어머니는 시인 박목월님의 아내가 되십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칭찬 한마디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 동덕여대 아동학과 교수 우남희 -

 

  자녀교육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보낸다. 읽어보고 버려도=======

 

 

2016.11.10     영국에서 온 답장

 

 

아버님,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제가 가장 못해 주었던 것이 바로 '칭찬'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과 글이 다른 나라에 와서 학교 다니기 힘들어 침대 밑에 들어가 울 때도 있었고, 집에 놀러 온 한국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영어로만 얘기해서 끼어 놀지 못해 서럽게 울었던 민석이...    그러다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마자 저는 학교 공부 잘 따라가고, 남의 나라인 이 나라에서 안 좋게 보이는 행동이라도 할까봐 주의를 주고 충고를 하면서 칭찬은 가뭄에 콩나듯 주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제게 부족한 것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칭찬을 많이 해 주어야지 다짐을 하곤 하지만, 제 자식인데도 왜 그렇게 새삼 칭찬하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잘 안 되는지요.  이제 민석이가 대학을 가게 되면 집에서 다니든, 기숙사에 나가 살든 부모품을 떠나게 되겠지요.  그 시간이 만 4년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여러 감정이 교차되곤 한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10대 시절에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격려해 주고 보듬어 주어야지요.  민석이 아빠는 잘하고 있으니 저만 잘하면 된답니다. ^ ^

 

아버님, 추워진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2016.12.9. 받은 메일

 

 

(한글날 연합 글쓰기 대회 장원)

 

탐나는 탐라

 

2 류민석

 

탐라’ .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우리말이 아닌 줄 알았다. 제주도의 옛이름이라는 탐라꽤 탐나는 이름이네! 그 의미는 깊고 먼 바다의 섬나라라고 한다. 이과 같이 뜻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들은 재밌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본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들었다.

여보, 요즘 중국인들이 제주도 땅을 점점 더 많이 사서 마음대로 개발하려고 한대요. 너무 예쁜 우리제주도가 망가지면 어떡하지?”

안 돼제주도는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곳인데.’

제주도가 특별한 이유는 이 섬으로 내 부모님이 신혼여행을 갔다 오셨고, 내가 두 살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서 놀다 온 곳이고, 철들어서 또 한 번 다녀온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국에 사는 한국 친구들 중 몇 명이 제주도에 갔다 왔는지 궁금하다. 외국에 살면 한국에 방문하는 것도 어려운데 일부러 제주도까지 구경하러 가는 아이는 드물 것이다. 3년 전 부활절 방학 때,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갔다. 보고 싶던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들을 만나며 11초를 아껴가면서 이곳 저곳을 다녔는데, 그 중에서 제주도에 갔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안타깝게도 아주 짧은 12일 여행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태경 이모덕분이었다. 나는 태경 이모라고 부르지만, 사실 엄마와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이다. ‘이모라는 단어도 웃기다. 식당에 가서 주방 아주머니들께 이모, 밥 한 공기 추가요!”하면 반찬까지 더 주신다. 꼭 엄마의 여동생이 아니어도 친숙한 여자분들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많이 써 보고 있다. 이렇게 우리말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외국인들은 이해 못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친한 사람들을 가족같이 여긴다. 태경 이모가 아니었으면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알찬 계획을 잘 짤 수 없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모는 제주도가 고향이니까.

우리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어서,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맨 처음 목적지로 향했다. 비자림 숲. 왠지 듣기만 해도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울창한 난대림이다. 몇 천년 전 싹을 틔운 비자나무들의 속삭임과 새들의 노래가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점점 깊이 걸어 들어갈수록 나무들도 덩치가 커지며 우거졌다. 영국에서는 못 보던 조용한 한국의 산길을 따라 걷던 기분이 다시 떠오른다.

엄마와 태경 이모는 나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 주시려고 가시리라는 마을에 있는 조랑말 체험 공원에도 데려가 주셨다. 마을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마치 가세-가위의 제주도 방언-‘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가시리라고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오시리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는 말이 자라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서 옛날부터 말을 많이 키워왔기 때문에 말에 대한 기록도 많다. 조랑말 박물관에서 말에 대한 자료도 이것저것 보고 실제 말을 타 보기도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몸국이라는 특별한 국도 먹어 보았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사람 시체를 끓여 먹는 식인종이었나?”라고 말을 하였지만 독특하고 매운 맛은 중독성이 강했다. 돼지고기 삶은 물에 모자반이라는 것을 넣고 끓인 제주도 전통 음식이라는데, 옛날 잔치할 때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해 만들었던 국이라고 한다. 몸을 살려 줄 만큼 따뜻하고 맛있었다. 항상 서로 돕고 나눠 먹기를 좋아했다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음식인 것 같다.

엄마한테서 듣는 제주도 지명 이야기와 인터넷 사진을 통해 본 제주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외국인들이 탐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건 단순히 여행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우리말도 배우고, 방언들의 유래까지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경치와 한글을 갖춘 제주도야, 기다려. 내가 또 찾아갈 테니!’

 

 

 

(한글날 연합 글쓰기 대회 장원)

 

탐나는 탐라

 

2 류민석

 

탐라’ .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우리말이 아닌 줄 알았다. 제주도의 옛이름이라는 탐라꽤 탐나는 이름이네! 그 의미는 깊고 먼 바다의 섬나라라고 한다. 이과 같이 뜻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들은 재밌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본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들었다.

여보, 요즘 중국인들이 제주도 땅을 점점 더 많이 사서 마음대로 개발하려고 한대요. 너무 예쁜 우리제주도가 망가지면 어떡하지?”

안 돼제주도는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곳인데.’

제주도가 특별한 이유는 이 섬으로 내 부모님이 신혼여행을 갔다 오셨고, 내가 두 살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서 놀다 온 곳이고, 철들어서 또 한 번 다녀온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국에 사는 한국 친구들 중 몇 명이 제주도에 갔다 왔는지 궁금하다. 외국에 살면 한국에 방문하는 것도 어려운데 일부러 제주도까지 구경하러 가는 아이는 드물 것이다. 3년 전 부활절 방학 때,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갔다. 보고 싶던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들을 만나며 11초를 아껴가면서 이곳 저곳을 다녔는데, 그 중에서 제주도에 갔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안타깝게도 아주 짧은 12일 여행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태경 이모덕분이었다. 나는 태경 이모라고 부르지만, 사실 엄마와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이다. ‘이모라는 단어도 웃기다. 식당에 가서 주방 아주머니들께 이모, 밥 한 공기 추가요!”하면 반찬까지 더 주신다. 꼭 엄마의 여동생이 아니어도 친숙한 여자분들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많이 써 보고 있다. 이렇게 우리말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외국인들은 이해 못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친한 사람들을 가족같이 여긴다. 태경 이모가 아니었으면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알찬 계획을 잘 짤 수 없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모는 제주도가 고향이니까.

우리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어서,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맨 처음 목적지로 향했다. 비자림 숲. 왠지 듣기만 해도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울창한 난대림이다. 몇 천년 전 싹을 틔운 비자나무들의 속삭임과 새들의 노래가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점점 깊이 걸어 들어갈수록 나무들도 덩치가 커지며 우거졌다. 영국에서는 못 보던 조용한 한국의 산길을 따라 걷던 기분이 다시 떠오른다.

엄마와 태경 이모는 나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 주시려고 가시리라는 마을에 있는 조랑말 체험 공원에도 데려가 주셨다. 마을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마치 가세-가위의 제주도 방언-‘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가시리라고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오시리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는 말이 자라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서 옛날부터 말을 많이 키워왔기 때문에 말에 대한 기록도 많다. 조랑말 박물관에서 말에 대한 자료도 이것저것 보고 실제 말을 타 보기도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몸국이라는 특별한 국도 먹어 보았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사람 시체를 끓여 먹는 식인종이었나?”라고 말을 하였지만 독특하고 매운 맛은 중독성이 강했다. 돼지고기 삶은 물에 모자반이라는 것을 넣고 끓인 제주도 전통 음식이라는데, 옛날 잔치할 때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해 만들었던 국이라고 한다. 몸을 살려 줄 만큼 따뜻하고 맛있었다. 항상 서로 돕고 나눠 먹기를 좋아했다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음식인 것 같다.

엄마한테서 듣는 제주도 지명 이야기와 인터넷 사진을 통해 본 제주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외국인들이 탐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건 단순히 여행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우리말도 배우고, 방언들의 유래까지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경치와 한글을 갖춘 제주도야, 기다려. 내가 또 찾아갈 테니!’

 

 

 

 

 

2017.5.6. 보낸 메일

벤 카슨 이야기

 

벤 카슨- 그는 책을 통해 지식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이 그의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에는 '신의 손'이란 별명을 가진 소아신경외과

벤 카슨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 의학계에서 '신의 손'이라는 별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계 최고의 의술을 인정받고 있는 의사입니다.

그가 저명한 의사가 된 데에는 특별한 이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많은 의사들이 수술을 포기했을 정도로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던 4살짜리 악성 뇌암 환자와

만성 뇌염으로 하루 120번씩 발작을 일으키던 아이를 수술하여 완치시킨 일입니다.

 

두 번째는 1987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머리와 몸이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샹쌍둥이로 태어나 불행한 앞날이 예고되었던 파트리크 빈더와

벤저민 빈더가 카슨 박사의 수술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 수술을 통해 벤 카슨은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손을 가진 벤 카슨도 아주 어두운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그를 보고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의사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벤 카슨은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8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편모슬하에서 자라면서 불량소년들과 어울려 싸움질을 일삼는

흑인 불량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백인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초등학교 때에는 항상 꼴찌를 도맡아하는 지진아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암기하지 못했고

산수시험을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하여 놀림감이 되곤 했습니다.

 

이런 불량소년이 어떻게 오늘날 세계 의학계에서

신의 손이라는 칭송을 얻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느날 그에게 한 기자가 찾아와서,

"오늘의 당신을 만들어 준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쇼냐 카슨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늘 꼴찌를 하면서

흑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할 때도, ', 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격려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벤 카슨은 그의 어머니가 끊임없이 불어 넣어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는 말에 사로잡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적이 오르기 시작해 우등생이 될 수 있었고, 사우스웨스턴 고교를 3등으로 졸업했으며, 명문 미시간 대학 의대에 입학하여 '신의 손'을 가진 의사가 되었습니다.

 

빈민가의 불량소년, 꼴찌 소년, 놀림과 따돌림을 받던 흑인 소년을 오늘의 벤 카슨으로 변화시킨 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해준 말 몇 마디였습니다.

 

 

", 넌 할 수 있어. 무엇이든지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

 

 

할아버지!

 

 제가 이번에는 더 좋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봤어요. 사이트 타이틀은 '류가 뉴스'이고 링크는:

 http://minseok5432.wix.com/my-news

다가오는 설날과, 또 시욱이와 혜성이의 졸업 축하 기사도 사이트에 넣었으니까 꼭 제 사촌들에게 보여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모든 기사의 아래에 있는 'READ MORE' 버튼을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잘리지 않고 모든 사진/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민석 올림.

 

 

 

할아버지!

 

 제가 오늘 저에 대한 웹사이트를 재미로 만들어 봤는데, 아래 링크로 가면 돼요.

http://minseok5432.wix.com/my-lifestory

 

민석 올림

 

2018년 은주가 런던에 가서

      

                                                                                 2018 영국가다

 

 

 

                                  

 

 

 

 

                  

 

 

 

 

 

 

 2020. 조손간에 주고받은 메세이지

 

2019. 12. 16.에 캠브릿치대학교에서 브리핑을 마치고,  45분간 시험관과 대화를 나누면서 잘 풀었다는 메세지를 받고

결과는 2020.01.15에 있다고 했다.

캠브릿지 입학을 위해서는중학  6학년 때 시험 성적이 좋아야 부리핑에 초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             2020.01.15

안타깝게도 떨어졌습니다.
안좋은 뉴스를 전해드리게 되서 실망스럽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했다는 뜻이니...
그래도 준비하면서도 수학실력을 좀 더 탄탄히 쌓아야 한다는걸 깨달아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제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차원에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제는 졸업시험 그레이드를 모두 A* 받는데 집중하겠습니다.
(물론 6월달에 STEP 이라는 수학시험도 따로 볼 건데, 워낙 잘 나오면 캠브릿지에 다시 지원해볼만 하지만, 제일 어려운 시험이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실력을 키우는데 노력할게요.)
 그동안 응원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8월에는 기쁜 소식을 직접 한국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카톡메세지 잘 보았다.
민석의 분석이 아주 매섭고 각오가 단단함에
기쁨을 느끼겠구나
그래 고맙다 민석아민석이가 많이 컷구나.
너의 글을읽고 할아버지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격었단다.
그래.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나는 우리 손자 민석이를 믿는다!

힘내자! 아자! 아자! 아자!

 


오늘 우리 민석군의 생일이다!        2020.01.25.
축하한다. 민석아.
오늘은 한국의 설날과 겹쳐서 더 뜻있는 날이 되었구나.
열여덜살이 되었고 새해엔 대학생이 될 테니까 이제부터는 자신의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탐구하는 자세로 집중적 자세로 해야 하는 시기가 된거야.
어떤 주제를 잡으면 거기에 전력투구를 하는 거야. 곁눈질은   절대 금물.
집중! 집중! 절대집중! 한 구멍만 깊이 파야하는 거야.
할아버지가 이런 말 안 해도 민석이가 더 잘할 거라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2020.02.20.

안동에도 환자들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조심하세요... 그러시고 계시겠지만요.

전화를 하기 엔 시간을 놓친 거 같고, 저는 내일부터 1주일 동안 시험을 봐야 해서

(기말고사 비슷하게?) 다음 주 토요일 날 통화해요 ...
 사랑해요,      민석

 

 

 

고맙구나!       2020.02.20.

 멀리서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여주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고, 생각이 깊고 영특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다음 주에 있는 시험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있고, 준비도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이란 언제나 중요하단다.  인생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의 시험은 중요한 것이니 항상 공부를 게을리하지말고 준비를 해야한단다.  민석이가 다음 주의 시험이 중요한 것을 알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한더,  이제 시험에 임해서는 자신있게 대할 것이며 신중히 한 문제 한 문제를 실수없이 잘 하기 바란다.  할아버지는 기도할께.

 A*을 위하여  아자! 아자! 아자! 

 

 


 2020.03.05.

오늘이 오경의 생일이구나.
먼저 생일을 축하한다.
민석이가 영국으로 간 것도 11년이 되었구나!
그간 우리 교민의 자녀들에게 한국의 말과 글과 정신을 일깨우는 한국학교 교사와 외국인을 상대로 한글을 가르치면서 굳센 모습을 보였으며, 류기한의 아내로 류민석의 어머니로의 역할을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해 왔다고 믿는다.
고맙구나!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구나.
장하구나!
무엇보다 우리 류 기한을 잘 보필하여 주었고, 민석이를 착하고 똑똑하며 씩씩한 청소년으로 길렀으며남부럽지 않는 한
집을 가꾸었다는 점을 치하하는 바이다.
한 번 더 오경의 생일을 축하 축하한다.
힘내라. 이제 큼직한 훈장이 너희 가슴에 달릴 것이다. 나가자. 나가자. 힘차게
아자! 아자! 아자!

                                             아버님, 매번 생일 선물 보내 주시고
최고의 칭찬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게 해 주신  칭찬을 들을 만큼 제 가 잘해 왔는지 제 자신을 돌아 보면 그냥 정신없이 살아 온 것만 같아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또는, 그 땐 그렇게 하지 말걸...' 그런 생각이 드는 일이 너무 많아요. 인생은 연습이 없다 보니 늘 아쉽지요. 
그래도 '오늘'이 가장 소중하니까 하루하루 보람있게 잘 살겠습니다!!!

 

 

 

 

아버지,

 

수필이 정말 좋네요.

나팔꽃이 피는것을 팡파르에 비유하고 인생을 설명하는것이 많은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친구분들이 글솜씨가 정말 대단하시네요.

좋은글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염병이 무섭게 퍼져가는 요즘 항상 조심하시고 건강히 지내세요.

 

사랑해요..... 아버지, 어머니....

 

                                                           기한 올림